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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GQ 6월호

2016.05.23 View : 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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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아이린

‘아이린’이라고 불린다. ‘레드벨벳의 아이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현아”하고 부르는 사람도 물론 있다. 봄에 태어난 1991년생. 초여름 같은 날 그녀를 만났다.



촬영하는 동안 날씨가 확 바뀌었어요. 들었어요. 밖에 비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별로 감흥이 없는 말투네요. 지금 무슨 생각해요? 오늘 제가 처음으로 혼자 온 거 같아요.

아, 혼자서 인터뷰하는 게 처음이군요. 설레었는데, 그냥 설레기만 했는데, 어젯밤엔 한 숨도 못 잤어요.

그 기분을 알 것도 같은데, 사실 전혀 모르는 거겠죠. 혼자서, 혼자 하니까….

말을 거르려고 애쓰지 말아요. 그냥 편안하게 해요. 예전에는 뭔가를 혼자 하면 좀 불안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표현한다는 것이 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 촬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멤버들이 없어서 외롭다거나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인터뷰가 잠시 멈췄다. 아이린은 천장을 보고 있다. 비가 퍼붓는 일요일 저녁. 나오는 눈물을 굳이 참으려는 아가씨가 여기 앉아 있다.)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어렸을 때 맨 처음에 꿈꾼 건 아나운서였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는 6학년 언니가 방송반 아나운서였어요. 그 언니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 나도 하고 싶다고 언니한테 말했더니 시험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실기도 있고 필기도 있었어요. 필기에는 대통령 선거일이 언제인가 하는 상식 문제가 나와요. 근데 붙었어요. 1년 동안 아나운서를 해봤어요.

‘하고 싶다’와 ‘지금 한다’ 사이가 유난히 짧은 사람이 있죠. 맞아요.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경험해봤어요. 메이크업도 배우고 싶어서 배웠고,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바로 학원을 알아보기도 했어요.

레드 벨벳이 세상에 나온 지 2년이 되어가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때와는 사뭇 달라졌을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보는 나에 대해서는, 그냥 제가 그렇게 보였으니까 그렇게 판단을 하시는 거라고…. (그녀가 다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신경이 안 쓰이진 않아요. 티를 안 내려고 하죠. 저를 모르게 하고 싶어요. 사실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근데 저는 항상 생각을 해요.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좀 더 제 자신이 안 외로울 수 있게, 제가 좀더 단단해질 수 있게, 그렇게. (인터뷰가 길게 멈췄다. 그녀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에디터는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린의 얼굴을 다른 누구와 단박에 구분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는데, 얼굴에서 얼핏 그늘이 스쳤달까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그건 그냥 솔직한 얘기죠. 인간이 어떻게 콘셉트와 캐릭터로만 살겠어요.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신나보이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에, 또 내려온 후에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너무 필요한 사람 같았어요. 네.

자기가 마음에 들어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느낀 것에 대해서 항상 적어두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항상 일기를 썼어요. 요즘은 짧게 짧게 메모를 해요.

아까 수첩에 메모하는 설정을 줬을 때, 그 모습이 착 붙는 이유가 있었군요. 패드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과 펜을 눌러 쓰는 차이를 알죠? 정말 그래요. 집에서 잘 안 나가는데, 유일하게 가는 곳이 집 앞 카페예요. 거길 갈 때면 필통이랑 노트를 가지고 가요. 한적한 곳이라서 몇 시간씩 뭘 끄적이다 와요.

좋아하는 펜이나 종이가 있어요? 제가 생각을 해봤어요. 왜 나는 딱 이 펜이 좋아, 저 펜이 좋아, 이런 게 없을까. 왜 나는 딱 이게 좋고, 저게 좋고, 이런 게 없을까, 왜 나만의 것이 없을까.

생각 끝엔 뭐가 있던가요? 펜마다 다르잖아요. 모양도 색깔도 느낌이 다 다르니까요. 이 펜은 이런 점이 좋고, 저 펜은 저런 점이 좋잖아요. 하나만 딱 골라서 좋아할 필요는 없구나, 생각했어요.

갑자기 이런 질문이 나오네요. 어쩌다 가수가 됐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자기 오디션 보는 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갔어요. 그런데 떨어졌어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이걸 정말 하고 싶어 했구나. 떨어진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제가 대성통곡할 줄은 몰랐거든요.

일단 해봐야 아는 성격이 거기서도 보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어느 날 계약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야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던 길에 전화가 온 거예요. 저 그때 가만히 서 있었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웃음) 그 장소와 공기가 기억나요. 저는, 지금의 나, 지금의 내가 느낀 것들이 너무 중요해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잖아요. 그래서 적어놔요. 정말 자세하게요. 이 노래를 내가 왜 좋아했는지 잊고 싶지가 않아요.

얼굴은 어때요? 자기 얼굴을 잘 아나요? 얼굴이요? 그런데 저는 거울을 잘 안 봐요.

그래요? 양치를 하면 입만 봐요. 양치를 해요. 입을 헹궈요. 그럴 때 다른 데로 시선이 안 가요. 입만 봐요. 입만 보며 헹구고 나와요. 얼굴을 잘 보지 않아요. 그래서 볼에 뾰루지가 났다든가 그런 걸 잘 몰라요. “언니, 여기 뭐 났어요.” 누가 알려줘야 알아요. 미장원에서 머리를 말려주잖아요. 그러면 저는 머리만 봐요. 다른 데는 신경이 안 쓰여요.

내가 어떻게 생겼다는 느낌이 있어요? 저 좀 새침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어느새 지워지는 얼굴 같기도 해요. 제가 그래요?

바뀌는 줄 모르고 바뀌는 얼굴이랄까. 잘 잡히지 않죠. 사실 레드 벨벳이라는 팀에도 그런 모호함이 있죠. 대대적으로 히트한 노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일부러 못 알아보게 한달지, 붙박히지 않죠. 그래서 계속 보게 만들어요. 아이린은 배우를 해도 좋은 얼굴 같은데요. 제가 연기를 해보기는 했어요.(웃음)


왜 웃어요? 아니에요. (웃음). 웹 드라마를 찍었는데,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제가 대본을 보고 느끼는 거랑, 감독님께서 이런 표현과 저런 표현을 말씀해주시는 걸 듣는 게 너무 좋았어요.

목소리는 어때요? 목소리가 작아요. 느리고요.

하지만 답답하진 않아요. 웅얼거리지 않고 분명히 말하니까요.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죠? 맞아요. 주위에서 “너는 얘기를 듣는 표정이 너무 좋다”는 얘기를 해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대요.

자신이 몇 살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요? (한참 말이 없다.) 저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요.

재미있네요. 옆에 어떤 남자가 서 있으면 어울릴까 생각해보니 나이가 꽤 많은 사람이 떠올라요. 저는 따뜻한 분이 좋아요. 눈빛이나 행동이 따뜻하신 분.

자기한테 막 잘해주는 거랑은 다른 얘기 같네요. 맞아요. 의자를 빼주면서 막 챙겨주는 건 별로예요.

큰 나무 같은 사람. 맞네요. 항상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몰라서, ‘큰 개’ 같은 (웃음) 사람이라고 했거든요. 제가 나무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하는데.

휴대전화에 가장 많이 있는 사진은 어떤 거예요? 하늘이랑 나무요. (대뜸 휴대전화 사진첩을 보여준다). 저는 하늘을 정말 자주 봐요. 연습생 때는 그네를 정말 오래 탔어요. 근데 이런 얘기는 정말 처음 해보네요. 내 얘기를 이렇게 하는 건….

그러려고 인터뷰를 하는 거죠. 연습 끝나고 그네를 서너 시간씩 탔어요. 그때 하늘을 봤어요. 별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 뒤로 하늘을 자주 보게 됐어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하늘을 봐요.

좋아하는 계절이 있어요? 벚꽃 필 때요.

생일이 그 때쯤이죠? 네. 경주 보문호 쪽에 벚나무가 굉장히 많잖아요. 가족들과 항상 거기로 자전거를 타러 갔어요. 오늘 비가 많이 온다는데, 저는 아직 봄이에요. 계속 봄 같은 느낌이예요.

곧 여름이 올 거예요. 저는 또 눈이 올 때를 좋아해요. 대구에서 살 땐 눈을 별로 못 봤어요. 연습생 되고 나서 서울에 왔는데 눈이 정말 펑펑 내리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테이블 위에 샌드위치가 그대로 있다.)

배고프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아이린은 무엇이 되고 싶어요? 저는, 항상 생각해요. 단단한 사람이 됐으면, 제가, 단단했으면….

아이린은 말을 자주 멈췄다. 눈물이 나서도 그랬고, 골똘히 생각하느라 그러기도 했다. 그 시간이 참 예뻤다. “저는 항상 생각을 했어요.” 다시 말을 시작할 때면 그렇게 말했다.